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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남자와 여자의 마음, 그리고 끊임없는 수고를 해야 하는 이유


출처-야고보의 우물-http://cafe.daum.net/truth00 "섭리에 관한 이야기"

 

남자와 여자의 마음, 그리고 끊임없는 수고를 해야 하는 이유

 

 

 

 

하나님은 여자에게는 아이를 낳는 고통과 남자에게는 밭을 일궈야 하는 수고를 부여하셨습니다.

 

 

하지만 어떤 이는 무통 분만을 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나면서부터 노동을 하지 않아도 되는 환경에서 나서 죽기까지 그 상태로 살다가 가는 이도 있습니다. 따라서 이 말씀을 육적인 관점에서 이해하면 안됩니다. 남자와 여자라는 용어는 영적인 역할로서의 의미를 가진 용어입니다.

 

 

창세기 1장을 보면 그냥 "하나님"이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십니다. 그리고 이어진 2장에 보면 흙으로 육체를 빚으시는 말씀이 다시 언급이 됩니다. 2장에는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냥 하나님이란 "절대자이신 하나님"을 말하며, 2장의 여호와란 사람에게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말합니다. 집에서는 "아버지"가 직장에 나가면 "사장님"으로 바뀌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성경은 그렇게 이름이 바뀌는 것을 "기념 칭호"라고 적고 있습니다.

 

 

[호세아]

저는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시라 여호와는 그의 기념 칭호니라

 

 

1장에 말씀하신 남자와 여자라는 것은 하나님과 같은 "생령" 혹은 "생기"를 말하는데, 생령이란 선과 악을 알되 "선만을 향하는 상태의 마음"을 뜻합니다. 그 "영"을 6일 동안에 창조하신 것입니다. 사람의 육신은 인생에게 함께 하시는 여호와(만군의 주) 하나님이 흙으로 만들고, 그 다음에 이미 창조된 생기, 즉 씨뿌리는 남자의 영과 하나님의 백성을 낳는 여자의 영을 만드신 것이며, 그 영을 두 사람에게 넣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은 영이시다." 하시고 또 "살리는 것은 영이며 육은 무익하다."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영이 산다는 것은 '마음이 사는 것' 을 말합니다.

 

 

이어서 같은 맥락에서 "사람의 딸들"과 "하나님의 아들들"이라는 말씀에서의 사람의 딸이란 위와 같은 의미로 악을 향한 마음을 가진 자들, 즉 아벨의 제사법을 따르지 않는 자들의 딸들을 말하며, 마치 선민을 "아들"이라고 하듯이 하나님의 법 안에 거하는 사람들을 "하나님의 아들들"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이것이 행위의 율법에서 그대로 적용이 되었었지만, 그리스도 이후의 마음의 법 아래에서는 한 사람에게 모두 적용이 되는 원리로 바뀌게 됩니다.

 

 

한 개인 안에서 피전도자의 '낳음'을 희망하는 마음이 곧 여자의 마음이며, 거룩함을 향해 나아가 결국에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야 하는 것을 알고 수고를 행하는 마음이 곧 남자의 마음입니다. 모든 사람은 이 두 마음을 모두 가지고 있으며, 그 두 마음 중에서 '자기 외적'인 마음의 원함을 충족시키려는 마음이 곧 여자의 마음입니다.

 

이것을 행하다가 마음이 피전도자에게로만 집중이 되게 되면 곧 세상을 향해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와가 먼저 선악과를 따먹은 것으로 묘사를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남자의 마음은 다시 여자의 마음이 유혹하는 것을 이기지 못하고 '자기 합리화'를 시도하고, 여자의 마음이 인도하는 대로 따라가서 세상에서의 높음과 채움을 추구하며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 속한 행사를 해야만 선악과를 따먹은 것이 아니라 교회 안이든 밖이든 관계없이 높음이나 채움을 추구하면 그것이 곧 선악과를 따먹은 여자의 마음으로 향한 것입니다.

 

 

우리 구역이, 우리 반이, 우리 교회가, 우리 교단이 더 높아지고 채워지는 것을 목적으로 하며 오늘날 교회라는 것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것이 아들이 되어야 하는 남자의 마음을 가져야 하는 자들이 모두 선악과를 따먹는 마음인 여자의 마음에 이끌려 선악과를 먹는 것입니다. 이때 뱀이 유혹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라는 자기 합리화의 유혹입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한다는 가르침을 듣고 예수님께로 온 사람이 다시 세상으로 마음을 향하는 과정이 이와 같으며, 오늘날 선악과를 따먹는 남자와 여자의 마음은 ‘교회 안에’ 가득합니다.

 

 

남자와 여자의 두 마음을 가지고 세상에서 사는 동안은 명령을 따라서 낳음을 행하되 자기를 부인하는 용도로 전도를 하고 핍박을 받으며 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남자의 마음이 여자의 마음에 유혹을 당하지 않고, 또 전도를 하고 낳아야 하는 여자의 마음이 뱀의 유혹에 빠지지 않고 승자가 되었을 때 종국에는 사람의 마음에 '여자의 마음'이 없어지게 됩니다. 여자의 마음이 없어지면 그 마음에 남는 것은 남자의 마음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아들이 되리니"라고 가르치신 것입니다.

 

 

이것을 육신의 경우로 말하면서 성차별이 시작된 것이고, 전세계에 만연된 성차별의 근원이 성경이 되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성경의 이같은 말씀을 육신의 경우로 적용을 하는 것 역시 모두 불법을 행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늘 자기의 마음 밭을 갈아야 하는 수고를 하고 지혜를 깨달음 받는 열매를 맺어, 영의 양식으로 먹고 남자의 마음을 자라가게 해야 합니다. 남자의 마음이 자란 만큼 여자의 마음을 덜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악이 많아지면 선이 줄고 선이 많아지면 악이 줄어드는 것과 같습니다.

 

 

근본적으로 인생의 마음은 악을 향해 언제든지 내려갈 수 있는 무거운 추를 달고 사는 것과 같습니다. 부지런히 팔을 움직이지 않으면 가라앉을 수 있는 장소가 바로 세상입니다. 물론 점차로 장성하여 팔의 힘이 강해지면 보다 쉽게 물 위를 향해서 올라가고 또 올라간 상태를 유지하기도 쉬워집니다.

 

그리하여 결국에 물 위에 온전히 뜨게 되면 예수님과 같이 바다 위를 걷는 상태, 남자의 마음만 가진 상태, 하나님의 안식에 든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마음이 선으로 향해 있으면서 밭을 가는 수고를 하지 않으면, 우리의 육신은 매일 악에 속한 것들을 눈으로 보고 육신으로 느끼며 살고 있는 상태이므로 자연히 악을 향한 마음을 더 갖게 되는 것입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라고 가르치셨습니다. 화평케 한다는 것은 자기의 마음을 말하는 것이며 또한 타인의 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내 마음이 화평한 상태가 아니면서 타인의 마음에 화평, 곧 하나님의 안식이 안주하게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엘리사의 이야기에 보면 나아만 장군이 엘리사의 종인 게하시에게 "평안하냐?"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평안이냐?"라고 게하시가 엘리사의 사람인가를 묻는 내용이 있습니다. 화평, 평안, 안식, 거룩함은 모두 같은 말이며 이 말은 마음에 '여자'는 없고 '남자'만 있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므로 곧 '아들'의 상태를 말합니다.

 

 

다시 말해 “평안이냐?” 하는 말은 “너도 아들이 되고자 하는 사람이냐?” 하는 말과 같은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창조된 피조물과 남자나 여자의 육신의 상태는 단지 전도서의 말씀과 같이 하나님의 섭리의 그림자로 나타낸 것입니다. 그래서 "이미 한 것을 또 하며 인생들의 눈 앞에 보여지고 있으니 만물은 피곤하다."라는 가르침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마음에서 세상에 속하려는 상대적 욕구를 향한 마음을 비워 내고 자기의 마음 밭을 가는 수고를 게으르지 않게 하여 영이 날로 자라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려고 해야 합니다.

 

 

남자의 마음으로 지혜를 구하고 성령을 받아 말씀을 깨달음 받고, 그 깨달은 말씀으로 자신의 영적 성장을 꾀하고, 그 길에서 여자의 마음과 명령을 따르는 '낳음'도 행하되, 무엇이 먼저이고 무엇이 중요한 것인가를 바로 마음에 새기고, 좌우로 치우침이 없이 흔들림 없는 매일 매일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선의 경주는 자기의 마음 안에서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