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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부자와 나사로 | 섭리에관한이야기

출처-야고보의 우물-http://cafe.daum.net/truth00  

 

"부자와 나사로 | 섭리에관한이야기" 중에서

당신은 지금 거지 나사로의 마음을 가지고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 있습니까, 아니면 부자의 마음을 가지고 세상에서 고민을 받는 중에 있습니까?

 

 

길을 잃었다고 생각하는 인생에게 있어서, ‘빛’이라고 인식이 되는 말씀을 따라 길을 가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데에는 ‘사람의 생각’과 ‘하나님의 인도’와 ‘사람의 실천’이라는 순서가 매 과정마다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의 처음은 인생이 스스로 인생의 헛됨을 인지하는 것입니다.

 

인생살이의 헛됨을 인지하지 못한다면 결코 마음이 하나님을 향할 수가 없습니다.

 

 

오늘날 기독교를 ‘종교’로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가 세상에서도 잘살고 천국, 혹은 영생도 얻어 보자는 생각을 가지고 성경을 읽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을 장악하고 있는 사단이 넣어 준 마음을 가지고 그 앞에 엎드린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신은 하나님을 향한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은,

 

“인생은 헛된 것이니 거기서는 낮아지고, 비우고, 끝내는 십자가 앞에서 죽어라. 그러면 내가 영원한 삶, 곧 영생이 무엇인지 알려주겠다. 그리고 그 후에 살게 되는 나머지 삶 동안은 안식에 들어 마음이 평안한 상태에서 자기가 인지한 그 하나님이 주신 ‘평안’을 세상에 전하게 할 것이다. 그리고 그 결국엔 내 아들이 되게 할 것이다.” 입니다.

 

 

이런 말씀이 아니라 세상에서 마음에 족함을 느끼면서 ‘부자’로 사는 비법을 전수하는 책이라는 시각으로 성경의 말씀을 대하니 그 말씀이 읽힐 리가 없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돈에 관한 말씀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일만 악의 근본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 ‘돈’이란 연보를 하는 지폐, 동전, 금화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돈’이란 욕심을 가진 사람의 마음을 족하게 하여 “부자의 마음을 갖게 하는 모든 것”을 뜻합니다.

이렇게 첫걸음부터 문제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문 안으로”는 한 걸음도 내딛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또, 처음엔 내딛는다고 해도, 영이 아브라함의 품에 안기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결국에는 허상적, 인생적, 상대적 사고에 준한 욕심을 부리다가 다시 나가거나 넘어지는 일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욕심을 다 버리고 거지 나사로의 마음을 가지게 되었을 때에 안기게 되는 아브라함의 품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어떻게 자신이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 있는지를 알게 되는 것일까요?

 

 

성령의 법인 잠언의 말씀에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품이란 “아브라함이 품고 있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거기에 안겨 있다는 말은 그 마음과 함께 하므로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그 품은 영으로, 즉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 안 죽고 영원히 살기를 바라는 그 마음을 사람이 품을 때에만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가령, 어떤 자식이 아버지가 멀리 있다고 해도 그 아버지의 마음을 알고 있고, 또 늘 느낀다면 그 아버지가 미국에 있든지, 혹은 한 칸 벽 너머에 있든지 실은 별 차이가 없습니다.

 

한 칸 벽 너머든지, 미국이든지 안 보이기는 마찬가지이니까요. 물론 요즘은 컴퓨터로 목소리에 화상까지 볼 수 있으니 단지 만질 수만 없을 뿐입니다.

 

하지만 어떤 자식도 아버지를 만지고 싶어하지는 않으므로 늘 아버지와 함께 있다고 느끼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입니다.

 

 

사람이 아브라함의 품을 소망하는 마음을 품으려면 아브라함의 품에 품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아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얻으려면 하나님이 세상을 왜 만드셨고, 그 위에 인생을 왜 만드셨는지, 그리고 지금은 무슨 마음으로, 무슨 생각으로, 어떤 일을 하고 계시는 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알기 위해 성경을 읽는 것이 되어야 성경은 읽히는 것입니다.

 

 

물론 성경을 읽는 것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자식이 미국에 가 있는 아버지의 마음을 알려면 그 아버지가 왜 미국에 갔는지, 거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아는 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함께 일을 해야 합니다. 같은 관심사를 가지고 늘 동 시간대에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아버지를 그리워하지 않으면서 늘 그 아버지의 품을 알고 그 품에서 사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생은 하나님의 뜻이 담긴 말씀을 읽으려 하는 것이고, 그 마음을 보신 하나님은 “이것이 진리다” 하는 것을 보여 주시는 것이고, 그것을 본 사람은 가르침을 따라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사로처럼 살다가, 하나님의 생각을 알 수 있는 하나님의 섭리적 이론을 공부하고, 그 공부를 마치게 되면 하나님이 세상에 인생들을 향하여 진행하시는 사랑의 섭리의 일부분을 담당하며 하나님과 함께 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과정에서 사람에게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늘 “부자의 마음”입니다.

 

 

당신의 마음에는 어떤 부자의 마음, 사단의 품에 안기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는지요?

 

당신은 지금 어느 단계에 있는지요?

 

 

1, 하나님이 인생에게 정하신, 인생으로서 세상에 나온 목적을 아십니까?

 

2, 길을 모른다고, 혹은 잃어버렸다고 생각했습니까?

 

3, 성경 안에 변하지 않는 영원한 것, 곧 진리가 있다고 생각을 했습니까?

 

4, 바른 시각으로 성경을 읽고 진리를 발견했습니까?

 

5, 아브라함이 품고 있는 그 품의 뜻, 곧 인생을 향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다 알았습니까?

 

자기를 부인하여 말씀 앞에 자기를 주장하지 않는 자기 부인을 했습니까?

 

6, 그로 인해 당하게 되는 인생으로서의 괴로움, 즉 자기가 쌓은 것을 허무는 과정에서 당하는 괴로움인 자기 십자가를 기꺼이 지고 있습니까?

 

7, 하나님께서 행하시고 있는 일 중에 한 부분을 부여받아 하나님과 호흡하며 함께 섭리 진행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는 중입니까?

 

8, 하나님의 일꾼은 인생으로서의 자기 생활을 돌아보지 않는다고 했는데 그러합니까?

 

9, 그 결국으로서의 오늘 지금, 당신은 평안합니까?

 

평안하지 않다면 당신은 지금 어떤 부자의 마음을 가지고 고민을 받고 있는 중입니다.

 

 

지금 당신의 마음을 살피십시오. 당신은 지금 어느 단계에 처해 있습니까?

 

당신을 지옥에서 살게 하는, 고민과 괴로움의 원인인 그 부자의 마음을 지우고 다음 단계로 걸음을 옮기십시오.

 

매 단계의 첫걸음은 사람이 언제나 먼저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먼저 하실 일, 곧 십자가 달림으로 당신이 가야 하는 길을 여시는 일은 이미 하신 뒤입니다. 이제는 당신 차례입니다. 그리고 당신의 첫걸음이후는 이미 인도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다만 당신이 발을 떼지 않고 있을 뿐입니다.